올 해를 이틀 남겨두고 눈이 푹푹 내린다. 눈이 내리는 대부분의 아침은 대체로 조용하지만, 오늘 눈은 세상에 리모컨을 대고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이렇게 큼지막한 눈이 내리면 간밤에 도시 어딘가 벽들이 세워졌고 세상은 곧 사라지는게 아닐까, 가만해지게된다. 배명훈의 <고고심령학자> 이야기다. 지금껏 사랑하는 책들을 여럿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몇 권을 꼽으라면 가슴 가까이로 끌어안고 싶은 책 중 하나. 눈길에 발걸음을 조심하며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오늘은 이 책의 문장 몇 개를 옮기면 그 시간에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 둘 데가 많지 않은 곳이다보니 천문대에서는 마음이 단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저절로 사람이 소박해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근심이 생겨나면 그 근심 하나에 붙들려 사나흘을 전전긍긍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천문학자라도 어느 밤 권태에 지쳐 그 일을 함부로 내팽겨쳐서는 안 됐다. 그가 보지 않으면 인류 전체를 통틀어 그 별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지 모른다.
그는 날을 세우고 있지 않았고, 은수도 전혀 베인 데가 없었다.
'날은 나만 품고 있겠지.'
미안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날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살림살이에 보탬은 안 됐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분명 닫혀 있는 문 몇 개를 열어주는 일이 틀림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사방을 둘러싼 수천 개의 유리창 중 몇 개에 묻어 있는 먼지를 닦아주는 일이랄까.
잘 알려진 면담 전문가답게, 은경의 역할은 쓸모없는 사례를 걸러내는 일이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기도 귀신을 봤다고 이야기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변종 전체를 아우르는 차투랑가 특유의 합리성
그 아비규환의 와중에도 차분하게 무언가를 받아 적던 문 박사의 태도. 그 후로 내내 은수는 그런 문 박사의 차분함을 배우려고 애썼다. 은수에게 그것은 초심이나 다름없었다.
공부라는 것은 스스로 단단히 마음 먹지 않으면 이어지기보다는 끊어지기가 더 좋은 사치스러운 취미였다.
인생은 아직 끝장나지 않았지만 삶은 묘하게 불행해져만 갔다. 누구는 쓸데없이 많이 배워서 그런 거라는데, 옳은 말인 듯도 하고 영 아닌 것도 같았다.
다만 고고심령학자이기 때문에 현장에 나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에는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은수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은 고고심령학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은수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확신이었떤 셈이다. 정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고고심령학자로 여기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확신은 얼마나 절실한 걸까.
반려인의 추천으로 신혼여행 때 들고다니며 한 번을 읽었고, 5년 3개월이 조금 더 지난 올 해 가을 구마모토 여행을 가며 한 번 더 읽었다. 처음 읽을 땐 검정색 표지의 가벼운 종이책이었고, 이번엔 전자책이었다. 마음껏 밑줄을 그어도 책이 상하지 않는 전자책이어서 참 많은 문장을 손가락으로 따라 짚었고, 꽤 많은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았다. 그래서 아주아주 간추려 몇 문장만 옮겼다. 혹 문장을 읽고 책 전체로 옮겨가는 사람이 있다면, 스포일러가 최대한 안 될 정도이길 바라면서 골랐다.
학부 졸업 즈음엔 베버와 루만, 부르디외의 이론을 접할 일이 많았다. 고작 학부생이 몇 개의 텍스트와 이론으로 그들의 이론을, 사상을 이해했겠냐만은, 그리고 이미 그들의 이름 빼곤 모든 개념어들이 낯설어졌지만은, 지금껏 잔잔하게 내가 낯선 사람을, 세계를 접할 때의 태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주 희미하게 느낀다.
이번 가을에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바라왔던, 동경했던, 속하고 싶었던 합리성의 세계가 어떤 세계였는지 생각했다. 아니 내가 두고 온 게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학계"라고 말하기엔 결코 정확하지 않지만, 그 '사람들'을 교집합으로 구성하는 세계. 그 '체계'를 이루는 '합리성'. 같은 주술에 걸린 사람들을, 같은 '장(field)'에 발을 딛고 서서 사랑하고 싶었다.
정보라 작가님의 추천사의 표현대로 "이 소설에는 특히,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정서가 있다."
여기 그려진 모든 것이 '좋은 예', '잘된 예', '이상'인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감히 이입하여 사랑하게 된다.
작년 쓰기 모임에서 '잘 그만두는 이야기'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일드 <콩트가 시작된다>를 보고 쓰고 싶었는데 결국 쓰지 못했다. 뭔가를 그만 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씩 충분한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것을 일본 규슈 땅의 료칸에서 비로소 느끼며 조금 울고 싶어졌다. 결국 직장인이 된지 1년차 신혼여행을 가며 이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우리가 이론과 관찰을 계속하여 넘나드는 과학도, 이 땅의 어느 시점 어느 지역의 위대한 여자아이들을 찾아내는 구술을 따는 인류학도를 아직 마음에 품고 있는, 그 쪽에 가까움을 느끼는 두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내가 이제 그것을 '과거'로, 먼 곳에 둔 '지난 꿈'으로 정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촉감으로 푹 빠져 읽었고, 반가웠고 감사했고 즐거웠다.
내년엔 이 책의 배경이 된 천문대에 가고싶다. 그리고 어딘가의 은수와 은경들이 배곯지 않고 각자의 별을 들여다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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