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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일기/읽은 문장들

[문장들] 공룡의 이동경로 (김화진, 2023)

by momorae 2023. 12. 3.

 

너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건 너밖에 없구나.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거짓말은 다른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속이는 행위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것. 거짓말은 진심에서 나온다.

 

내가 지닌 어쩔 수 없는 성격 같은 것들이 상대를 질리게 하고 실망스럽게 해 서서히 멀어지게 될까봐 겁이 났다.

 

나는 취향 이상으로 지원을 좋아했지만, 항상 취향 위주의 주제로만 대화가 빙빙 돌던 탓에 오히려 다짜고짜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묻지 못했다.

 

내 삶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야. 파도처럼 아래가 위를 덮치고 뒤가 앞을 밀어서 계속해서 오는 거야. 끊임없는 고통이고 위로야. 그걸 다 느껴보는 일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일이야.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영원히 그러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엇보다 그런 게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 눈을 거두지 않는 것.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는 것.

 

운좋게 살아남아 서울까지 와서, 나로서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우연히 얻은 일상을 열심히 지키는 일. 돈을 벌고 청약을 넣고 전세금을 모아 마련한 작은 토분 같은 내 방, 내 일, 내 거리, 내 그림, 내 애인, 내 친구들을 지켜야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느낄 거라고, 작은 내 자리에 나를 끼워 맞추며 다짐했다.

 

일하는 중에도 애인을 만나다가도 솔아 주희 현우와 모임을 하다가도, 효진의 전화가 올까봐 문득문득 놀랐다. 나는 그 때부터 얇디얇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허깨비처럼 희미해진 것이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효진이 전화해서 또 죽기 직전의 목소리로 죽는다는 말을 할까봐.

 

너무 행복한 건 다 지나가나. 언젠가 솔아와 퇴근 후 맥ㅈ를 마시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걸어서 건넜던 것이 떠올랐다. 그 다리 같은 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길. 그 길동안만 행복하고 결국에는 행복 다음으로 가야하는 거야. 행복 다음은 슬픔. 우리가 계속 건너다녀야 하는 곳은 슬픔이지.

 

내가 지금 내 슬픔으로 꽉 찼고...... 내가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만 정확히 알아.

 

집을 구하고 나서는 정말로 다시 살기 위해서, 산다는 감각을 재정비하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허리와 배애 힘을 주었다. 자꾸만 물렁물렁해지는 것을 세워보려고. 자리를 옮겨 다시 한번 디뎌보려고 노력했다.

 

나 스스로에게 핑계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다 이유가 있다 내 안에는 다 이유가 있어 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효진은 나를 갉아먹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틀린 생각도 아닐 것이다. 나는 내가 튼튼하다고, 충분히 튼튼해서 아프고 마른 친구를 위해 기꺼이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나는 영양분을 잃어버린 친구 곁에서 함께 비쩍비쩍 말라갔다. 그걸 솔아가 눈치챘는지 못 챘는지는 알 수 없다. 내 입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내가 지금 허덕이고 있다고. 한여름 볕에 타버린 나무처럼 입이 말라서, 혀가 말라서 말할 기운이 없었다. 그게 어떤 사람에게는 무신경하게, 무례하게, 무관하게 보였겠지.

 

나는 이걸 '나 깔때기'라고 부른다. 타인에 대한 모든 고민들이 결국 나를 향하고 나를 위한 것으로 흘러가는 현상.

 

나는 언제나 눈치를 살폈다. 사랑하는 이의 감정과 기분과 어제와 오늘을. 자격지심과 자존심을. 제대로 봤는지는 모르겠다. 오로지 내 시선으로만 상대를 보니까. 편파적인 렌즈를 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열심이었다.

 

그럴듯한 것. 나에겐 그런 것이 중요했다. 어느 정도 그럴듯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몫을 해내는 일. 기자는 그런 면에서 참 그럴듯한 일이었다. 경제적 독립을 주고 사회적 영향력도 주니까. 나는 언제나 적당히 정의로운 사람일 수 있었고 너무 속물적인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직업 덕분에.

 

누군가의 행동 하나하나에 경멸의 표정을 하고 일부러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수군거리던 아이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 사람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왜 이렇게 그 사람의 약점을 건드리고 싶은 마음 가까이에 있나. 나 자신이 너무 비열해서 허무했다.

 

내가 조심할게. 지켜줄게.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오만한 자기 확신의 말이었는지. 이를테면 상처주지 않겠다는 말처럼. 절대 너에게 상처주지 않을게, 라는 말은 얼마나 순백색의 멍청함인가.

 

저 하나 있어요. 책 속 문장.
왜 얘기 안 했어요, 아까?
그냥. 부끄럽기도 하고...... 요즘 꽂힌 거지 영원한 건 아니니까.

 

김화진은 타인에 대한 타고난 열정으로 이 상처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디며, 그 안에서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고야 만다. 이 탐구가 자신의 내면으로 함몰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모순되고 얽혀 있는 마음들 중에서 진정한 '나'를 골라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읽고, 12월 옮김

 

김화진 작가의 <나주에 대하여>가 나왔을 때부터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결국 못 읽다가 다음작인 <공룡의 이동경로>부터 읽게 되었다. 이 책으로 김화진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처음 주희의 마음을 읽을 땐 조금 샐쭉해졌다. 언젠가부터 아낌없이 사랑을 하고 서슴없이 마음을 준다고 자기 선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뾰족함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랑은 갑자기 끝나는데, 그렇게 사랑이 끝난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관계에 과연 그들은 책임을 지는가, 책임감이란게 있는 것인가 차마 묻지 못한 채로 혼자 조용히 꽁해졌다. 그런 무책임한 일을 당했다기보다, 나는 무겁도록 지고 있는 그런 책임감을, 스스로 못이겨 기여코 상대를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기 직전의 문턱에서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그런 일을, 쟤는 겪지 않는 것 같아서 꽁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다 주지 않고 읽다가 솔아와 지원의 챕터에서는 그저 다 내어주는 심정으로 읽었던 것 같다.

 

효진을 돌보는 지원의 말라감에 대한 묘사가 너무 무서웠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영리하지 않으면서, 또 내 잇속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결코 아니면서, 조심한다는 이유로 내가 늘 무언가를 재며 타이밍은 놓치는 동안, 먼저 손을 뻗어주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내 마음 한귀퉁이에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하며 상대의 먼저 건넴을 당연히 여기고 마음이 생겨난 것 같았는데 정신차리고 뜯어내자 싶었다.

 

내 시야의 좁음으로 아끼는 사람을 잃었고, 다른 한편으론 다정함과 선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버틸 수 있었던 가을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