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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일기/읽은 문장들6

[문장들] 기억 서사 (오카 마리, 2024) SNS에서 간간히 추천받았던 책, 를 여행을 시작하는 비행기가 이륙하고나서 펼쳤다. 서문과 1부1장의 기억의 주체를 읽으며 '기억의 엄습함'에 대한 적확한 묘사 때문에 조금 울 뻔했다. 얼마 전 결국 다시 한 번 말하기에 실패한 개인적인 사건과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신체를 가로질러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사건성'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나는 왜 읽고, 사람들은 왜 문장을 벼르는가. 경험했던 것을 더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적확하게 표현하기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쓰는 게 아닐까. 집에 와서 e-book 리더기를 통해 밑줄친 문장들과 페이지들의 몇 가지를 옮겨 적자니, 목차를 적어두어야할 것 같다.서문. 기억을 나누어 갖기 위하여 제1부. 기억과 표상과 서사.. 2024. 12. 10.
[글 공유] 사진적 이미지에서 확률론적 이미지로 - 김신 SNS에서 우연히 다음 글을 발견했고, 긴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즐겁게 읽었다. 촘촘했고, 만약 밑줄을 긋는다면 거의 대부분이 형광펜이 쳐졌을 것이다. https://www.kmdb.or.kr/story/837/8211 사진적 이미지에서 확률론적 이미지로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나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감상을 즐기기 www.kmdb.or.kr 구체적으로 설명 같은 걸 늘어놓지 않아도 알아들을 사람은 대강 알아들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거”, “저거”라고만 말해도 대강 맥락을 파악할 정도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사람이 ‘실제로’ 다.. 2024. 11. 23.
[문장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2023) 세세하게 배려받는 것 같지만 치밀하게 소외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도 때문이라기보다는 온도의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감기에 걸린다. 새로 구한 집은 원룸이었지만, 사용 공간은 훨씬 넓었다. 석현의 쓰레기들이 없어서였다. 석현의 작품들이 없어서였다. 화영은 그게 좋았다. 좋다고 느껴지는 게 좋지는 않았다. 무엇인가를 포기했기 때문에 석현과 헤어지게 된 것일까.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았기 떄문에 석현과 헤어지게 된 것일까. 언제든 포기해도 상관없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헤어졌으니까. 이별은 우주와 선미가 함께 만들어낸 축복이었다. 실패가 아닌 결실이었다 기어이 같이, 해냈다. 우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 2024. 2. 12.
[문장들] 고고심령학자 (배명훈, 2017) 올 해를 이틀 남겨두고 눈이 푹푹 내린다. 눈이 내리는 대부분의 아침은 대체로 조용하지만, 오늘 눈은 세상에 리모컨을 대고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이렇게 큼지막한 눈이 내리면 간밤에 도시 어딘가 벽들이 세워졌고 세상은 곧 사라지는게 아닐까, 가만해지게된다. 배명훈의 이야기다. 지금껏 사랑하는 책들을 여럿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몇 권을 꼽으라면 가슴 가까이로 끌어안고 싶은 책 중 하나. 눈길에 발걸음을 조심하며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오늘은 이 책의 문장 몇 개를 옮기면 그 시간에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 둘 데가 많지 않은 곳이다보니 천문대에서는 마음이 단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저절로 사람이 소박해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근심이 생겨나면 그 근심 하나에 붙들려 사나흘을 전전긍긍하는.. 2023. 12. 30.
[문장들] 공룡의 이동경로 (김화진, 2023) 너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건 너밖에 없구나.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거짓말은 다른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속이는 행위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것. 거짓말은 진심에서 나온다. 내가 지닌 어쩔 수 없는 성격 같은 것들이 상대를 질리게 하고 실망스럽게 해 서서히 멀어지게 될까봐 겁이 났다. 나는 취향 이상으로 지원을 좋아했지만, 항상 취향 위주의 주제로만 대화가 빙빙 돌던 탓에 오히려 다짜고짜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묻지 못했다. 내 삶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야. 파도처럼 아래가 위를 덮치고 뒤가 앞을 밀어서 계속해서 오는 거야. 끊임없는 고통이고 위로야. 그걸 다 느껴보는 일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일이야. 파도를.. 2023. 12. 3.
[문장들] 작은마음동호회 작은마음동호회나이를 먹듯 꾸준히 가난해지는 자기 언어의 잔고를 매일 지켜보는 회계사이고, 자신의 정직과 허세 양쪽으로부터 소장을 받고 힐난을 당하는 피고소인이다. 승혜와 미오승혜는 스스로 남들의 시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 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점이 미오와 승혜의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승혜는 그런 사람이었고, 있을 수 있다거나 있어야 한다는 문제를 떠나 이미 그냥 그렇게 세상에 '있었다' 마흔셋어디에도 머무르거나 닻을 내리지 않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마 그 짧고 미친, 경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문화적으로는 톡톡히 혜택받은 이십대 초반의 한 조각이 너무도 달콤해서였던 것 같다. 엄마를 방치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매일 밤 베게 밑에 깔고 잠을.. 2023.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