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21 [2024 산인 여행] 겨울밤여행 05 상상해왔던 것보다 훨씬 드넓었고(애초에 조금 큰 해변 정도의 상상이 크게 잘못되었다), 모래가 섞인 바닷바람은 정신 없었으며, 정말 좋아해온 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잔잔하게 그러나 꽤 오래 바라왔던 곳에 드디어 와봤다는 사실 등등으로 꽤 벅차고 어쩐히 멍한 상태였다. 좋았다는 뜻이다. 떠나기 아쉬웠고. 그래서 작은 기념품을 꼭 사서 가지고 가고 싶었는데, 이것이 돗토리인지 이집트인지 알 수 없는 괜한 낙타가 그려진 못생긴 마그넷밖에 없었기에 좀 더 나은 마그넷을 찾으러 삼만리. 계획에 없었던 전망대와 모래미술관에 가보자 했다. 좀 더 가까운 모래미술관으로. 별다른 정보 없이 방문한 모래미술관은, 거대한 모래 조각이 전시된 공간으로,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규모와 비주얼의 공간이었다. 우리가 .. 2025. 6. 6. [2024 산인 여행] 겨울밤여행 04 도예과의 야마다는 건축과의 마야마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그 사랑만이 자신의 유일한 자랑이자 취미, 몫과 자긍심, 이유이자 목적, 수단인 것처럼 소중히 아껴왔다. 단행본 8권만큼이나 시간이 흘렀을 때, 야마다는 마야마가 그가 오래 짝사랑해온 사람에게 한결 다정해지는데 막판의 확신 혹은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마야마의 등을 직접 살짝 떠민다. 그러곤 한동안 울음을 내내 참는 심정으로 일을 한다. 의뢰를 받고, 조율하고, 도자기를 굽고, 납품하고. 꾹꾹 참아온 울음을, 그보다 몇 살 더 산 사람들, 야마다를 아끼는 언니/형들에겐 너무 잘 보이는 것. 야마다는 노미야가 일하는 돗토리로 심부름 보내진다. 돗토리에 다녀온 한참 뒤에도 아무리 털어내도 어디선가 굴러떨어지는 신발의 모래를 .. 2025. 5. 7. [2024 산인 여행] 겨울밤여행 03 이즈모시의 켄죠소바 하네야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지역에선 와리코라 불리는 둥그런 식기에 담겨나오며 여러가지 고명을 올라가는 이즈모 소바가 유명하다고 한다. 생각보다 면이 두꺼웠다. 모밀은 나에게 짝사랑 음식 중 하나라 (좋아하지만 잘 체함) 조금만 꼭꼭 씹어먹어야지 하고 와리코 한 단을 짝궁에게 주었는데, 금새 내 것 다 먹고 짝궁 것을 야금야금 뺏어먹음. 이제와서 찾아보니 에도시대에 연 유명 맛집이라고. 신지호와 나카우미호를 지나오는데 불빛이 적어 짝궁 운전이 고되었다. 호텔에 차를 세우고, 어제 갔던 CASE로 다시 향했다. 어제 CASE에 들렸을 때, 사장님으로부터 다음날(그러니까 오늘) 이곳의 자랑할만한 로컬 비어인 DisenG beer의 탭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종일의 바쁜 운전과 찬 바람의.. 2025. 5. 6. [2024 산인 여행] 겨울밤여행 02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오르지 않은 요나고 성터에 올랐다. 어제 밤엔 까마귀가 우는 스산하고 침침한 곳이었는데, 맑은 아침에 보니 정겨운 동네 뒷산. 오르는 길에 가볍게 입은 동네 사람들 - 나이 지긋한 부부 또는 혼자 오르는 2030대의 여성 또는 학생 - 과 으레 모든 나라의 뒷산에서 그러하듯 "오하요" 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교차했다. 언젠가부터 짝궁과 국내외 여행에서 성터를 자주 찾는데, 어떤 유적지나 관광지의 모양새가 아니라 허물없는 뒷산으로서 동네와 일상에 녹아있는 성터는 새로웠고, 그게 꽤 푸근하고 좋은 느낌이었다. 산에 있는 성은 시야가 좋기 마련. 모든 방향에서의 다가옴을 관찰할 수 있는 곳. 가장 높은 곳의 탁 트인 곳에 서니, 산과 마을과 해안이 모두 잘 보여 지루할 틈 없이 몸을.. 2025. 5. 5. [2024 산인 여행] 겨울밤여행 01 24년 12월 초 에어서울 요나고 직항을 이용하여 5박 6일의 산인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다, 여행 중간에 계엄이 터졌다.) 주코쿠에서도 동해에 접한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을 산인지방이라고 일컫는 것을 처음 알았다. 편의상 산인 여행이라고 적었지만, 돗토리현의 가장 동쪽에서 시마네현의 가장 서쪽까지 300km가 넘는데다가 나는 내륙쪽으로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산인의 아주 적은 부분, 말그래도 동해와 맞닿아 있는 겉부분을 겉핥기한 셈이다. 요나고 시내의 호텔과 가이케 온천 지구 내 온천호텔에 각각 2박, 3박을 묵으며 렌트카를 타고 돌아다녔다. 연말까지 써야하는 휴가가 있었으나, 몸도 마음이 꽤나 지쳤던 상황이기도 하고, 선뜻 여행에 돈을 쓰기에 마땅한 사정도 아니었던터라 여행을 결심하기까.. 2025. 5. 2. [2024 봄이 오는 오키나와] 오키나와 중부 : 세상의 모든 파란 물감 이시가키섬에서 읽기 시작하여 북부 마지막날 밤에 덮은 소설이 있었다. 엄청 고자극의 소설이라 정신없이 읽었지만 결말까지 뭐가 없어서 약간 분노. 무튼 북부 마지막날 저녁/밤 시간을 독차지했던 책을 털어내자 이제 밑으로, 정말 홀가분하게 나하로 내려 돌아가는 날. 여행의 새로운 구간이자 마지막 구간에 들어섰다는 걸 알려주듯 가장 맑은 하늘이었다. 올라올 때와 달리 동부의 도로를 달렸는데 확실히 이 섬의 허리에 미군이 있구나를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군기지의 희거나 회색의 높은 담장과 철조망. 건장한 모습으로 달리는 군인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러 들린 브런치 카페의 메뉴판은 영어 뿐이고, 모든 테이블에 1명 이상의 백인. 만화 으로 오키나와를 처음 알고, 가장 최근에 본 오키나와가 배경인 콘텐츠가 일드 .. 2024. 5. 21. [2024 봄이 오는 오키나와] 오키나와 북부: 부서지기 이번 오키나와 여행을 요약하라면 { 이시가키 - 오키나와 북부 - 나하 } 또는 { 등대 - 성 - 맥주 } 또는 { 바람 / 바다 / 도로 }. 오키나와 본섬으로 돌아와 여행의 두번째 구간에 들어섰다. 이시가키에서 오전 비행기를 타고 나하 공항으로 돌아왔다. 나하 공항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도요타 렌트카 셔틀을 타고 거의 강남 운전면허시험장만한 렌트카 사무소에 들려 차를 빌렸다. 와 1차선이 아니라 무려 4차선이라니, 사람이 이렇게 복작이다니, 건물이 높다니, '와 도시로 왔네' 하며 농담을 했다. 이시가키에 머무는 내내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고, 여기저기 넓은 사탕수수 밭이 있어 독일에서 지냈던 기숙사 옆 들판이 자주 생각났었다, 그 때의 우울함도 약간. 오키나와 본섬은 여행의 새 .. 2024. 5. 6. [2024 봄이 오는 오키나와] 이시가키② 바람과 바다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4. 25. [2024 봄이 오는 오키나와] 이시가키① 섬의 섬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3. 2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