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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일기/듣고 본 것

[뮤지컬] 쇼맨

by momorae 2023. 12. 3.

 

#.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 어디에 누가 한 말이었을까, 또 누가 나에게 해준 말이려나.

대학교 선배들, 그 바닥 선배들 중 몇몇이 종종 하고 다닌 말이겠거니 싶은데 무튼 뮤지컬 <쇼맨>을 보고 나서 계속 이 말이 다시 떠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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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투모로우>에서 정훈의 역을 맡았던 신성민 배우의 차기작이라하여 봐야지, 봐야지하다가 역시 그대로 놓칠 뻔했는데, 나에게 곤투(뿐만 아니라 최근 다시 연극, 뮤지컬을 보게 한 대부분의 작품을) 소개시켜주신 분이 오열하다 나왔다며 추천해주셔서 얼마 남지 않는 공연 일정에 허겁지겁 예매하여 다녀왔다. 사실 지난 번 <오펀스> 때 정말로 ' 나 이러다 관크 되는 거 아닌가' 할 정도로 울다 나왔고,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다시금 날 울릴 무대공연을 찾고 있던터라 약간 설레었다 (<오펀스> 다시 안 오나요, 제발 재연해줘...). 정동극장은 그 동네만큼이나 그 자체로 좋았고, <쇼맨>의 음악과 가사가 좋았고, 5-6 파트라고 해야하나 네불라가 미국에서 와서 이디엇쇼를 하기 전까지의 부분에서 조금 울었고, 오열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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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고, 이걸 잘 받아들이고 싶은데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어서, 보고나온 뒤 몇 주를 틈틈히 곱씹어보려했던 것 같다. 꽤 긴 시간 감상을 정리하지 못하고 곱씹는 내내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잘 만들어진 좋은 극이었다는 뜻이겠지. 다만 여전히 소화를 못한 건 맞아서, 보고 나서 1-2일 계속 이런 느낌이라면 그냥 그대로 빠르게 한 번 더 보는게 맞겠구나 - 하는 뒤늦은 배움이 있었다.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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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인다면, 매일 매일 죽이고 싶은 나 자신을 머릿속에서 수백번 죽여가며 사는 사람, 번번이 살아남아있는 내 자신이 지겨운 사람이, 저런 한 번의 자기 구술, 저런 한 번의 타인과의 만남과 받아들여짐만으로 저렇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나, 저게 과연 저렇게 되나 하는 의심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사회적인 텍스트로 받아들인다면, "대신해서 살지 않겠다"는 표현이 지금 하고자하는 이야기에 가장 적확한, 최적의 표현인가 하는 탐탁치않음이 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김민섭 선생님의 <대리사회>라는 책을 읽고 크게 공감하여 구성한 극이라고 했다. 김민섭 선생님이 대리운전을 하는 당시 그때그때 남겼던 페이스북의 글들은 봤었지만, 하나로 정리된 그 책을 읽지는 않아서 <대리사회>에 나오는 개념어로서 '대리'가 어떤 뜻인지 알고 나면 그 탐탁치 않음은 해소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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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데리고 사는 게 참 어렵고, 지겨울 때가 있다.

그 과거가 떳떳한 것이든, 떳떳하지 못한 것이든, 무튼 젊고 어렸던 나, 아주 짧고 오래된 과거의 한 시점/찰나의 내가 내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나마 가장 나은 나일 때, 내가 나 자신과 가장 사이가 좋았던, 불화하지 않았던 순간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일 때, 그 시점에 못박혀 그 때의 나에 견주어 지금의 나를 더욱 혐오하는 그런 지금, 현생 - 에 대해 감히 모르진 않겠어서 그래서 보는동안 조금 미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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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딱 내 키만큼 높은 바다라서 어떻게 뛰어올라보면 숨도 쉴 수 있고 죽지는 않겠지만, 그냥 가라앉아 죽어버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 좋은 가사였다. 특히 처음 극이 시작할 때 물에 잠기는 듯, 숨이 막히는 듯 홀로 푸른 조명을 받는 배우의 연기와 그 물결의 조명과 연출이 좋았다.

 

최근 읽었던 김화진 작가의 <공룡의 이동속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내 삶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야. 파도처럼 아래가 위를 덮치고 뒤가 앞을 밀어서 계속해서 오는 거야. 끊임없는 고통이고 위로야. 그걸 다 느껴보는 일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일이야.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영원히 그러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엇보다 그런 게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 눈을 거두지 않는 것.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는 것.

 

이 문장을 읽을 때 "인생은 내 키만큼"이 다시 떠올랐다. 바다 뭘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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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사회학과 학생으로 '주체적으로 산다'라는 단어를 안 쓰고 졸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수백번은 썼을 것 같다. 와, 지금 생각하니 교육학과 과제에도 엄청 썼겠네. 3-4학년으로 짬이 차서 벼락치기로 수십장씩 글을 써 과제를 제출해야할 때도 그냥 적당히 뭉갤 수 있는 단어였을 것이다. 주체적 삶, 독립적인 삶, 주체성.

그리고 그 땐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는" 어른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만큼 속물적인 어른들을 경멸하기도 쉬었던 것 같고.

졸업반일 때 나는 정말 "자립"을 어디 써낼 정도의 내 목표로 삼았었는데(물론 아직도 못함), 그 자립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이지 최근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꼬박꼬박 내가 밥먹고 살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자립'을 한 것같은 착각을 하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안락함, 안일함, 단순함을 얻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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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기는 것. 네불라와 수아가 주체적으로 살지 못해 괴로웠다면, 그 주체적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해석권을 잃어버렸거나 놓쳤다는 것 아닐까. 해석의 방향과 밀도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것, 이 사회에서 그럴싸하다고 해주는 것, 구조가 형성한 욕망들을 따라가며 사는 게 '주체성'과 반대되는 거겠지. 아, 그리고 해석권을 놓친채로 누가 나를 해석해주길, 해석을 통해 "이해"해주길 갈구하는 것까지.

 

난 그래서 수아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보다, 마트에서 매니저로 승급하기 위해 이리 저리 주변 사람들을 조직하는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어떤 독재정치로 사람들을 가르고, 적을 만들어 공격하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하는 그런 일을, 쨋든 수아는 끝내 하지 않았다.

 

해석권을 놓치고 자기 삶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동안 네불라와 수아가 각자 앓았던 것은 다를 것이고, 쨋든 네불라는 했고 수아는 하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서로 공명하는 관계에서 각자 다른 것을 가져갔을 것이라는 점, 네불라에게는 쉽게 주어질 수 없는 용서를 수아에게는 줄 수 있는 점같은 그 차이가 좋았다.

 

#.

아,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뭔가 "책임은 졌어요. 이번 일은 이렇게 끝내요." 식의 대사가 있었는데 그 부분이 좀 좋았다. 그걸 좀 더 두껍게 다룰 수 없었나 싶었는데, 얼마까지 두껍게 다룰 수 있던 극인지는 다시 봐야 알 것 같다 (의견 철회 가능성 있음).

 

그 외에도 정확하고 좋은 대사들이 있었다.

"끝이 안 좋았어도, 나쁜 게 섞여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기억."

"가끔은 웃고, 가끔은 울면서 그렇게 자신을 참아냈어."

"내가 나의 적들을 용서하였듯, 그들 역시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말 모르겠어요. 내가 날 어떻게 봐야하는지, 내가 너무 싫은데, 싫어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억울함, 알고 싶지 않았다는 죄책감"

 

네불라가 젊은 날 극단에 들어가서 이 말도, 저 말도 다 그럴싸해 믿을 수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표현도 좋았는데 못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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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란 거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젊고 다음 세대와 역할을 연기했던 사람이 이렇게 늙고 곧 떠날, 그리고 어린 수아에게 다정함을 조금 남겨주는 사람을 연기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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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모르겠는 부분이 많아서 감상문은 도저히 정리되지 않고, 지난 한 달 틈틈히 메모해둔 것들을 기록상 남겨둔다.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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