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결투
2023.07.07 기록
대학로에서 연극 결투 관람. 여유있게 짝궁과 만나서 도도야에서 솥밥 먹고, 극이 끝나고는 을지로4가까지 함께 걸었다.
이런 안정적인 데이트/시간이 무척 간만이라고 느끼고, 나는 이걸 약 한 달 간의 금주의 성과라고 생각하는데 짝궁은 딱히 그렇지 않은 듯.
오랜만의 무척 작은 소극장에 매우 미니멀한 무대였다. 극을 보는 동안, 그리고 보고 나와서 직후 목이 메여서 한참을 달래야했다. 왜 그렇게 울음을 참고 보게 된 극인지. 알고 간 설정이기도 하지만, 나와 똑같은 나를, 죽이고 싶은 나를 마주해야한다는 것이 무덤덤하게 보기엔 너무 어려웠다. 물론 극에서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의 자문에서 '아닌 것 같아'라며 떨어져나온 분리체를 죽일듯이 미워하고 마는 쪽을 그렸지만, 나는 어쩌면 그 분리체를 죽이며 살고 있는 본체인 나 자신을 죽이고 싶은 것일지도. 알고, 그렇게 어렵지 않고, 오히려 조금은 설정이 가진 잠재성에서 많은 것을 덜어내고 두께는 얇게한 극이었지만, 그럼에도 주는 파동이 있었다.
극에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영향을 그다지 주고받지 않은 사람이기에 함께 (부부로) 살 수 있죠, 영향을 많이 준다면 어떻게 함께 살겠어요?" 식의 대사. 그것이 서른 넘어의 연애와 결혼 요건일 수 있겠다, 이해가 되면서도. 영향을 많이 받는만큼 사랑받고 사랑한다고 믿을 수 있었던 스물부터 만나 결혼한 나로서는 한 대 얻어맞는 얼얼함이었다. ← 전혀 극의 포인트는 아님
역시 극의 포인트는 아니겠지만, 이 상황 설정에서. 회사에 나가도 되지 않고, 배우자도 없는. 그야말로 사회적 '자리'가 없는 사람은 분열을 해도 역시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걸까 싶었다. 분열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있고 아닌 존재, 아니 분열했지만 사회/공동체에서 알지 못하는, 알지 않는 분열도 - 그리고 본체와 분리체도 - 있겠지.
각자에게 했던 말을 회상하는 독백이지만, 그 때 그렇게 말했던 톤을 살리며 하는 독백이 참 맛있었다.
집에 돌아와선
두 배우가 역할을 달리 하였다는 초연 영상을 신청했고,
윤이형 작가님의 책들도 몇 권 장바구니에 담았다. 붕대감기도 다시 읽으면 참 좋을텐데.
연극 관람기 한 편을 제대로 쓰기엔 아마 한참 걸릴 것 같아 짧은 메모만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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