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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일기/일상기록

금주 100일 성공 (2/3)

by momorae 202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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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일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하나씩 정리해보자.


 
💡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체중이 감소하진 않았다. 식단을 한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아침에 잠을 깰 때 머리부터 손끝과 발끝까지 부어있는 감각이 무척 당연해졌었는데 이게 사라졌다. 조금 더 가뿐해졌고, 팔다리, 손가락이 좀 더 길어진 느낌이었다. 운동할 때 자세가 더 잘나오거나 하는 식의 변화는 사실 없었는데, 며칠전 무척이나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다 - 몸이 가벼워졌구나. 지난 겨울동안 달리지 않다가 봄에 오랜만에 뛰려니 5분도 채 뛰기 힘들어 너무 괴롭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렇게 봄의 무릎부상과 더운 여름 날씨로 역시 몇 개월 달리지 않다가, 얼마전 도저히 달리지 않을 수 없는 맑은 저녁날 욕심 내지 않고 5분만 뛰자 하고 나갔다가 7분 인터벌로 뛰었다. 그날 컨디션이 좋았던 것일수도 있으나, 단번에 알았다. 이건 금주 효과다. 몸이 가벼워졌다-! 🏃‍♀️
 
💡 새벽에 덜 깬다
수면의 질을 높이는데는 사실 금주보다는 습관적으로 마시던 아침 커피를 끊고 카페인을 훅 줄였을 때가 더 효과적인 것 같다. 금주는 그만큼의 극적인 효과는 없었으나, 그래도 새벽에 깨는 것이 줄었다.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되고. 또 가끔 가슴이 확 눌리듯 아파 놀라며 깨는 밤도 없어졌다.
다만 야근을 하고 돌아와 빨리 잠에 드는 수단으로서 술을 대신할만한 것은 아직 못 찾았다. 한참 야근을 하고 오면 너무 늦은 시간까지 머리가 핑핑 돌고 있어 이 두뇌를 끄기가 쉽지 않아, 강제 PC 종료처럼 술을 통해 OFF 버튼을 눌렀다. 술이 없으니 이 점이 힘들어 지난 100일 동안 야근하는 날엔 잠에 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였다. 요건 좀 아쉬움. 아니 야근을 하지 말자🤣
무튼 주말 아침에 골이 흔들리는 기분으로 느지막히 겨우 일어나지 않고, 조금은 산뜻하게 8-10시 사이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도 잠과 관련된 장점이겠지.
 
💡 배달음식, 자극적인 음식이 줄었다
사실 배달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엄청 즐겨먹는 편은 아니다. 다만 이직 후 좀 더 저녁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과 코로나19 시기가 겹치면서 집 안에서 해결해야할 저녁의 끼니가 늘며 배달음식이 무척 늘었다. 신혼 초엔 한 달에 1번이나 먹던 치킨을, 어느새는 거의 월요일마다 먹고 있었다.
금주를 하고 나서도 치킨이나 마라탕이 먹고 싶어 무알콜 맥주나 사이다 등과 같이 먹긴 했다. 물론 맥주와 먹을 때보다 덜 맛있게 느껴져 자연스레 멀어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점차 치킨이 땡기는 주기가 길어졌다. 이전만큼 자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 맛이 생각은 났어도 그렇게까지 강렬한 충동으로, '먹어줘야만 하는' 것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나는 맛있는 술집의 맛잇는 안주는 훌륭한 요리라고 생각하는데 (그 술꾼들을 위한 술집 특유의 재료 배합과 시도들이 좋다) 그럼에도 그간 술과 먹은 안주요리들이 아무리 밸런스가 좋은 음식이었다고 해도 조금씩 더 짜고 매웠던 것이며, 거기에 길들여졌었나보다 - 라고 이제서야 깨달았다.
한편 배달음식이 줄어드니, 헤비한 야식이 줄고, 자기 직전(11-12시까지) 먹고 마시는 일은 좀 줄었다. 물론 무알콜 맥주에 감자칩도 먹고, 고구마 말랭이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하지만 이전처럼 가득 부른 배로 까무러져 자는 일이 어색해진 것은 꽤 좋은 일.
다만 닭가슴살도 맥주랑 먹으면 맛있어서, 닭가슴살+맥주로 평일 저녁을 종종 해결했는데, 술을 못마시니 닭가슴살보다 좀 더 만족스러울 다른 것들을 찾게 되어, 지속 가능한 평일 저녁 식단을 찾아봐야겠다.
 
💡 피부 트러블이 줄었다
피부에 대해 평소 크게 애먹던 바로, 금주로 기대하던 바도 없어서 잘 몰랐는데, 확실히 생리 전 나던 뾰루지 같은 게 준 것 같다. 뭔가 아침에 버석버석한 느낌도 줄은 듯. 
 
💡 브레인포그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
브레인포그 증상이 사라졌다-! 라고 하기엔 아마 다른 원인들로 여전히 겪고 있지만, 그래도 아침의 뿌연 정도가 좀 달라졌다. 깜빡깜빡하고, 단어가 생각이 안나고, 우선순위가 정리가 안되는 것들, 어떤 멍청함이 술을 끊으면 확실히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렇진 않고 여전히 기억력은 예전만 못하다. 노화인가😭 그래도 뭐랄까 아침 컨디션의 기본값이 소폭 높아졌다. 전날 술을 먹으면 당연히 술이 덜 깨 멍하였고, 술을 안 마셨어도 머리 속이 뿌옇고 탁한 느낌이었는데, 이젠 적어도 먹구름은 아니고 하얗고 뽀송뽀송한 구름과 그 틈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이는 정도는 된 듯!
여전히 아침엔 회사게 가기 싫지만 좀 더 선명하고 명료하고 또렷하게 가기 싫게 되었다 ㅎㅎ


💡 심심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생활적인 측면에서 좋은 점을 요약하자면 그렇다.
실제로 지금 회사로 이직하며 매일같이 하던 야근과 주말 출근이 줄면서 그게 당연히 좋으면서도 갑작스레 주어진 이 텅 빈 큰 시간에 좀 당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코로나19와 맞물리며 어쩌면 지난 2년간 여전히 그 시간을 채우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였던 듯 하다. 그래서 일단 시원하게 맥주 한 캔부터 따는 일이 늘어났고, 그건 그동안 이런저런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맛보는 것과는 다른 식의 음주였다. 4캔에 만원이라는 그 선뜻 지불하게 되는 가격과(물론 쌓이면 어마어마하다) 편의점만큼의 접근성으로, 참 쉽게 습관이 되었다. 부끄럽게도 심심해서 마셨다.
금주를 시작하고 나니 비로소 심심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심심함은 없애거나 견뎌야하는 것이나, 나의 비생산성과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좀 심심해도 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심심한 것과 지루한 것은 달랐다. 충분히 심심하고 나면 (반려인이 말하길 충분히 휴식하고 나면) 비로소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는 마음과 에너지가 절로 들었다. 그렇게 장편 소설도 읽었고, 몇 개의 드라마도 보았고, 리스트에만 오래 올려두었던 영화를 언제가의 주말로 미루지 않고 지금, 평일 저녁에 보기도 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도 했다.
여전히 운동은 하지 않고, 집안일은 미루었지만 비로소 내 저녁이 생겼다. 빨리 허겁지겁 맥주 캔을 따기 위해 최소한으로 빠르게 해치워야할 일들이 아닌 것들을 해보게 되었다.
더위가 식지 못한 여름 밤에도 술까지 마셨으면 열이 올라 더 더웠을 몸이 아니라서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하드 하나씩 입에 물고 오는 게 즐거웠다. 그정도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억울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으며 너무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술을 마시며 내일도 회사에 가야함을 억울해하며 짧은 밤이 아까워 기를 쓰며 깨어있다가 자던 일이 줄은 것이다. 물론 회사일로, 먼 통근거리로 나에게 주어진 저녁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은 것도 맞지만, 그 마저의 짧은 저녁을 더 짧게 만든 건 스스로였다는 생각을 했다.
삼삼한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심심한 저녁도 좋다 - 는 것을 배웠다. 어쩌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 감정의 진폭이 작아졌다
글쎄 나의 금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상담의 효과도 있을 것이도, 나의 금주보다 반려인의 금주로 인해 내 불안이나 스트레스 요인이 적어진 것도 있을 것이고, (역시 금주 때문인가) 좀 더 읽고 쓰게 되면서 감정을 정돈하는 일이 좀 더 잦아진 것도 있을 것이고, "금주 100일"이라는 단기적이고 분명한 자기 통제 프로젝트와 집중하고 헌신해야할 목표가 있어서 다른 곳에 신경을 덜 쓰게 된 것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찬찬히 지난 100일을 살펴보면 조금은 말 그래도 "Calm down" 했다. 물론 좋은 영화나 글에 대한 감동이나 벅참의 크기도 좀 준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감정 과잉이 줄었다. 감정 과잉 상태로 쉽게 서운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과격해지는 일이 지난 3개월 드물었던 듯 하다. 마지막으로 그러했던 게 언젠가 하면 꽤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글쎄 느끼는 감정의 크기가 줄어든 것은 아쉬운 점일까 싶지만 오히려 진폭이 줄은 만큼 더 세세하고 섬세하게 여러 갈래의 감정들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하며 일단은 지켜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도 반려인도 좀 더 차분해지며 오히려 더 여러가지 이야기를 잘 하게 되었다. 우리 커플에겐 오래전부터 술과 수다가 참 중요했었고, 나는 우리가 술을 줄이면 공통으로 할 일이 더욱 줄어들어 더 소원해지는 것이 아닐까 막연히, 그러나 꽤 큼직하게 무서워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젠 술을 줄여야 좀 더 확보된 에너지로, 명료하게,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듯 하다. 물론 앞으로 영영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여전히 위기감을 느낀다. 여행에서 함께 양조장에 찾아가거가 지역 술을 맛보고, 좋은 바에서 분위기를 내고,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찾아먹는 것, 좋아하는 양조장의 신상을 맛보는 것은 우리의 좋은 취미이고 콘텐츠이다. 하지만 이런 취미생활은 매일이 아니니까, 매일까진 필요 없으니까, 좀 더 오래토록 이 취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평소 일상의 습관적 술은 줄여야지. 평소 마시지 않고 좋은 상태로 대화할 수 있어야 취미생활도 같이 하고 싶은 관계이지 않겠나.

단 것은 좀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앗 쓰다보니 길어졌다. 금주 100일 동안 아쉬웠던 점 중 가장 명료한 것은 딱 한 가지인데 이는 다음 글에서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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