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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일기/일상기록

금주 100일 성공 (1/3)

by momorae 2023. 9. 24.

지난 6월 7일부터 시작한 금주를 지난 9월 14일까지 이어, 100일을 달성했다. 그리고 오늘(9월 22일)까지 안 마시고 있으니 대략 108일 정도 술을 몸으로 넘기지 않았다. 영영 끊는 것은 아니니 금주가 아니가 단주려나, 아무튼.
 
어제부로 반려인의 1개월x3회 금주도 성공적으로 끝나 아마 오늘은 술을 마실 것 같으니, 다시 내 몸이 들어오는 알콜에 반갑게 반응하기 전에 금주의 좋은 점을 간단히나마 적어둬야겠다.
- 사실 100일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먹는 건 아니다. 사실 오늘도 막 술이 땡기지는 않는데. 곧 여행을 가서는 마시긴 마실거라 (나마비루와 소츄 안 마실 수 없다) 혹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 몸이 되었는지 사전 탐사용으로... (핑계 같지만 핑계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진지하단 말이이에요😂)
-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혹시 예전처럼 연속적으로 계속 술을 찾게 되거나 그래서 다시 단주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망설이거나 두려워말고 단주를 시작할 수 있도록 미래의 나를 위해 적어둬야지.


금주를 결심한 가장 결정적 계기는 클레어 풀리의 <금주 다이어리> 이다. 그 전부터 술을 술여야지 번번이 생각은 했지만 쉽지 않았고, 그 쉽지 않은 여러 우려점과 두려움까지 생생하게 적혀있는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진심으로 금주 뽐뿌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자 클레어 풀리는 얼마나 뿌듯할까, 그녀의 블로그 독자를 포함하여 나처럼 출판서적으로 영향을 받은 전세계 여성 애주가는 과연 몇 명일지.

언제부터 축하가 아닌 해방을 위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까? 일상의 따분함으로부터, 그리고 현실이 내 바람과 다르다는 자각으로부터의 해방 말이다.

사실 삶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우리 중독자의 근본적인 문제는 의지할 무언가가 없으면 감정, 느낌, 상황, 삶 자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에서 음주가 일으키는 또다른 문제는 과도한 알코올 소비가 자기혐오, 불안,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관계에 집중하기가, 돼지저금통을 채우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앞서 결혼생활을 돼지저금통에 비유한다. 상대방을 위해서 다정하고 사려 깊고 관대하게 행동할 때는 동전을 넣는 것이고, 나쁘게, 생각없이, 부주의하게 대할 때는 동전을 꺼내는 것이라며, 자칫 텅텅 빌 수 있다고.)

음주가 사회생활의 윤할유에서 자가투약으로 얼마나 쉽게 발전할 수 있는지 이제야 알겠다.

정말 큰 문제가 터졌을 때 필요한 것은 맑은 머리이지 술에 취한 머리나 숙취에 시달리는 머리가 아니다.

나는 성장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으며, 어른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힘든 실천을 통해 쟁취해서 유지하겠다고 결심하는 감정적 상태라는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알코올중독자든 아니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성숙이 바깥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왼쪽에는 두려움, 오른쪽에는 희망이라고 적힌 교차로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그때마다 나는 의식적으로 오른쪽을 택해야한다. 언젠가는 다시 길을 자동적으로 선택하게 되면 좋겠다.

 
책갈피해놓은 문장들은 위와 같다. 이외에도 술을 생필품의 하나처럼 여기며 장을 볼 때 당연히 사고, 부족하지 않게 항상 구비해야하며 그렇기에 한 병보다는 넉넉히 n병을 사는 것, 천천히 취해가는 기분을 즐기는 것, 술을 끊는다면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서먹해질 것 같고 그들에게 내가 더는 재미없는 사람처럼 여겨져 혹시 멀어질까 두려운 것, 자꾸 술을 덜 마신 어린 시점의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똑똑했으며 가장 멋지게 문장들을 구사했던 것 같아 서글픈 것 등등 책 속의 모든 내용이 진짜 내 마음 그 자체여서 참 낄낄거리며 볼 수 밖에 없었다. 영미권 문학이나 에세이에 이렇게 큰 공감을 가지며 읽는 것이 처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구구절절 공감했다. 클레어가 본인 안의 '와인마녀'와 싸운 것처럼 나는 퇴근길부터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는 '맥주도깨비(맥주는 마녀보다 요괴가 왠지 더 잘어울리지 않나)'와 싸워보고 싶어졌다.
 
한편 이 책과 비슷할 즈음 읽은 책들은 <아내의 서바이버>, <우울한 사람 곁에서 무너지지 않게 도움 주는 법>이다. 그래, 그 때는 나 자신의 곁에 있는 것도, 내 반려인의 곁에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 뭐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술을 마시면서도 술을 찾는 스스로도 싫고, 술도 미웠다. 그런데 나에겐 몇 안되는 취향이자 나들이의 계기였고, 여가의 주요 콘텐츠였고, 반려인 포함 소중한 관계들과의 공유하는 추억이자 취미였기에 술을 끊는 것이 무서웠다. <금주 다이어리>는 이 두려움의 장벽을 공감할만한 문장으로써 허물어주었고, 실제 금주 100일에 성공한 지금 이런 두려움이 어느새 무색해졌다는 것을 방금 쓰면서 깨달았다.


꾸준히 변화들을 기록해놓았으면 좋으련만.
워낙 나에겐 큰 결심이고 이벤트였으며, 혹시 포기하지 않도록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을 냈던 터라 생각보다 엄청나게 괴롭지는 않았다. 정말 마시고 싶었던 날들은 몇 있긴 했었는데 이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에잇 몰라' 하며 진심으로 때려칠 직전까지는 사실 간 적 없다. 이렇게 말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그냥 내 나이와 내 수준에서 마실만큼 마셨다 -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이 마지막까지 남았을 미련으로서의 욕구를 떼어내버렸던 것 같다. (방탕도 미련이 안 남게 충분히 해야하는 것일지도. 어른들이 "더 놀아 더 놀아" 말씀하셨던 게 이런 뜻일까)
 
첫 한 달을 채우는 6월이 좀 힘들었던 것 같고, 7월에는 클레어가 '벡스 블루'로 버티듯 나 역시 무알콜 맥주로 버티다가, "무알콜인 주제에 맥주라고 역시 잠도 뒤척이고 뱃살도 나오게 한단말이야? 무알콜을 먹고 맥주 뱃살을 찌우기엔 너무 억울하다." 싶어 중반부터는 무알콜 맥주 음용 빈도도 줄였다. 8월부터는 몸도 조금은 가벼워졌고, 마음 속 오래 자리잡았던 술도깨비도 이사간 듯 했다. 하루를 채우는 의미로 아침 출근길에 1000원씩 저금하며 '전 날 안 마심 = 하루가 또 감'을 챙겼었는데, 8월부터는 그마저도 종종 까먹어 며칠치를 한 번에 저금하며 드문드문 일자를 파악했다. 100일을 채우는 9월의 남은 날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주변에선 '어떻게 이 더운 여름에-!' 라고 했고, 나도 벌컥벌컥하는 시원함을 들이키고 싶긴 했으나 사실 그나마 술이 덜 땡기는 계절이란 건 따로 없었으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저마다 생각나는 각기 다른 술이 있고, 애주가에게 술을 끊기 좋은 계절은 따로 없다. 4개의 막대 그래프의 높이가 서로 비등한 가운데 여름이 조금이나마 키가 더 크다면, 그 시원한 생맥주도, 차갑게 칠링한 화이트와인도 모두 이겨냈으니 다른 계절의 절주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확실히 50-60일 정도가 지난 날부터는 한결 수월해졌던 것 같다. 정말 뇌의 보상체계가 바뀌어가는걸까. 매일같이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던 시기가 낯설게 생각될 정도로, 남이 마시는 걸 봐도 '그런가보다~' 하며 아무 마음도 일렁이지 않았다. 뭘 하든 최소 두 달은 해야하는구나 - 라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주변에선 내 100일 챌린지가 끝나가길 챙겨주며 끝나고 어떤 술을 마실지 정답게 물어봐줬지만, 가급적이면 100+n일을 조용히 길게 가져가보면 좋겠다고 꽤 간절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될 것 같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좀 웃겼던 에피소드를 남기자면. 반려인의 대학원 졸업식날 축하 저녁 식사 때 반려인은 술을 마셨는데. 맛있는 온더락 소츄를 옆에서 먹고 있는데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 향이라도 맡아볼 생각도 못했다, 내가. 와 애주가로서 술의 향을 음미할 생각도 안하다니, 내 안의 술세포 다 죽은 건가(아님) 싶었고, 그걸 깜빡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 어이없어 한참 웃었다.


오랫동안 집을 집고 제 자리를 잡아 살았던 술도깨비가 나간 자리는 헛헛했다. 딱 사람이 돌보지 않은 집터만큼 고요했고, 조금은 쓸쓸했는데, 그래도 새롭게 바람이 불어들고, 초록초록한 새싹들이 제멋대로 자라나는 자유로움이 싫지 않았고 조금은 설렜다.
 
뭐 평생 술 안 마실 것도 아니고. 가끔은 마실 거니까. 가끔은 기웃거리게 하되, 내 안에 자리잡고 살지만 말라는 거니까. 
 
구체적으로 지난 100일 어떤 점이 좋았고, 힘들었는지는 다음 글로 나눠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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