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T언니, 나와 짝꿍 셋이 함께 2박3일 제주에 다녀왔다.
T언니가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좋은 숙소를 싸게 예약할 수 있다며 제안해줬고, T언니와의 나들이 자체가 무척이나 오랜만인데다가 언니의 연말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덥썩 물었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오며 여러가지 신변의 변화들로 여행 막판까지 취소해야하나 꽤나 우당탕탕댔지만, 어느덧 연말은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무척이나 즐겁게 다녀왔다.
제주도는 이십여년 전 가족여행을 한 번, 사회초년생 때 당일치기 출장으로 한 번이 전부였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 여행으로는 이번이 처음. 짝꿍은 제주도 입도 자체가 아예 처음. 대부분은 제주 경력자인 언니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다만 연말의 제주 항공권은 비싸서 언니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제주에 도착하고,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제주를 떠나게 되어 두 번의 반나절을 우리 둘이서 보내야했다. 평소 제주 여행을 막 자세히 꿈꿔보지 않았고, 다만 언젠가 제주에 가게 된다면 해보고 싶은 것들 정도가 러프하게 있었는데, ▲제주 4.3 평화 기념관 방문 ▲넥슨 컴퓨터 박물관 관람 ▲한라산 등반 ▲제주 공항 뒷편 해안도로에서 비행기 보며 달리기 ▲포도호텔 숙박 ▲제주 맥파이가서 드래프트 마시기 ▲제주시청 앞 회전교차로 방문 ▲김영갑갤러리 방문. 겨울인만큼 한라산등반과 달리기 제외, 포도호텔 제외, 회전교차로는 없어졌으니 제외, 동선상 김영갑갤러리도 언젠가의 다음번에. 맥파이는 언니와 함께 갈테니 일단 남은 두 곳을 시간되는만큼 가보기로 한다.


공항 렌트카존에서 쏘카 스테이션까지 20분 간격으로 셔틀이 운영된다. 쏘카 스테이션 2층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일단 점심 먹으러 출발.

빌린 차의 오디오가 매우 좋았다. 제주 드라이브의 첫 곡은 요새(?) 꽂힌 호시노겐의 MISS YOU 였습니다.
https://youtu.be/UikMHBKSprs?si=yLPvKyRT6vVyau1M
언젠가 제주도에 다녀온 회사사람이 정말 호들갑을 떨었던 메뉴가 고사리 육개장이었고, 오기 직전 친구에게 추천받은 건 제주 메밀 국수여서 마침 둘 다 먹을 수 있는 집이 보여 찾아왔다. 카카오맵평점 무려 4.3. 조금 이른 시간에 들어섰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식당이 꽉 찼다. 짝꿍이 말하기로 주차된 차 중에 하허호는 우리 뿐이었다고.



세 번의 제주가 모두 겨울이었고, 모두 눈이 와서 정말 추운 섬이구나 - 싶었는데 육개장 한그릇 뚝딱 먹고나니 몸이 데워졌다.
차로 15분 남짓,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도착했다. 국가폭력과 기억정치 관련 정말 많은 자료에서 제주 4.3 사건과 이 기념 혹은 추모 공간에 대해 읽고 접했음에도 막상 직접 와보는 것은 처음. 정말 늦게 와보는구나 싶었다. 1층의 상설전시실을 둘러보고, 평화공원의 위령탑과 각명비까지 다녀왔는데, 전시실의 내용들을 꼼꼼히 보느라 생각보다 긴 시간을 보냈다.
상설전시실은 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항아리가 곳곳에 깨진 돌벽의 통로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 입장하게 된다. 처음 마주하는 것은 비문 없이 뉘인 흰 백비. 그리고 제 2전시실부터 6전시실, 그리고 다랑쉬굴이 재현된 특별 전시실까지, 해방과 5·10 총선거, 47년 3·1 발포사건, 4·3 무장봉기, 초토화 작전과 한국전쟁, 학살과 일본에의 이주 등까지 제주 4.3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구성되어있다.
학살에 대해 기억하자고자 꾸린 긴 전시를 어떤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 뭐 내가 감히 어떤 비판이나 깊은 생각을 하며 볼 수 있겠는가. 뒤로 갈수록 그저 폭력이고, 살육이고, 말도 안되는, 믿을 수 없는 처참한 죽음이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목이 메여서 머리가 아팠다.
대학 생활의 절반 정도를 "국가폭력"에 "산화"된 이를 "추모"하는 공간에서 지냈지만, 직접 추모제를 기획·운영한 적도 있지만, 적절한 사회적 추모(의미의 구성과 공유)의 필요성에 대해 믿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적히는 죽음들은 사실 정말, 거칠게 말하면 개죽음이다. 폭력의 주어로서 위치하기에 국가란 것도 참으로 보잘것없고, 비루하다. 허술한만큼 악다구니로 사람들을 죽였다.
해방 이후 정치사, 이념 갈등에 대해 이 정도의 분량과 세밀한 전시는 이곳만이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대단했다.
한편 전시실 중간 반층 다른 공간에 "의로운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민간인 학살을 막으려한 군, 경의 개인들에 대한 기록들도 있었는데 그 점도 인상 깊었다.
기념관의 뮤지엄샵에서 <비판적 4.3 연구>라는 책을 샀다. 이 중 수록된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의 정치학(김민환)'이라는 글에서 이후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공화주의의 대한민국 '정부'가 2010년대 중반 할 수 있는 최대치로서, '소극적 항쟁론'과 '국가폭력론' 사이에서 구성한 내러티브, '항쟁'을 보류하고 '학살'만 남긴 내러티브에 대하여. 토벌대와는 화해하였으나 무장대는 우선 지웠으며, '사건'을 재구성하기보다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념한 것에 대하여.






기념관에서 시간을 많이 써서 곧 차를 반납하고 언니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남으면 도두봉에 들려 바다고 보고, 언니가 추천해준 카페도 다녀오려했는데 실패. 언니가 오전에 다녀올만한 여러군데를 추천해줬음에도 막상 하나도 다녀오지 못해 좀 미안했는데 공항에서 만난 언니가 "그래, 너희 거기 다녀올 것 같았다" 해서 민망하게 한 번 웃고 말았다, 헤헤.
셋이 넥슨컴퓨터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가기로 정하고 나니 이 문과가 이공계 두 명을 데리고 거길 가도 되는걸까 싶었지만 ㅋㅋ 막상 가보니 "컴퓨터" 라기보다 "넥슨(게임)" 박물관에 가까워서 별로 집중하지 않고 휘뤼릭 보았다. 그간 박물관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으며 아기자기하다고 좋은 후기들을 남겼는데, 우리는 그만큼 게임에 열렬하지 않았나보다.
언니의 말대로, 자신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게임을, 살며 처음봤을 게임을 익숙하게 푹 빠져 하고 있는 꼬꼬마 친구들을 보며, 역시 클래식이란 대단하다고.









박물관을 나와 약간의 언덕을 끼고 20분 남짓 걸어 한라수목원으로.
한라수목원 자체는 언제든 들어갈 수 있으나, 온실이나 난전시실은 동절기의 경우 17시까지. 17:05에 도착해서 그냥 수목원 한바퀴 돌았음. 초입의 수목원 지도가 오름까지 끼고 매우 넓어보여 "너무 깊숙히 들어가지 말고, 저정도까지만 다녀오자" 셋이 합의했는데, 축적이 매우 컸던 것이었다. 반 정도 온 줄 알았는데 다 와있고 그러해서 매우 금방 돌 수 있었다.




저녁을 예약한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간이 8시로 늦어, 유럽식 저녁식사답게 자체적으로 식전주를 마시기로했다.

맛있어서 남긴 사진이 정말 저 한 장 밖에 없다. 적으면서 다시 사진보니 입에 침이 고여서 을지로 맥파이에 달려가고 싶음.
과육 맛이 넘치는 꽉찬 사우어와 계절 한정 커피스타우트 마시며 에피타이저 해결. 술 마시면서 또 다른 맛있는 술, 마셨던 술, 마실 술 이야기함. 내년(2026년) 4월까지 함께 방문한 술집 계획을 세웠다.
저녁은 내추럴와인 1세대 레스토랑 중 하나라고 하는 르 부이부이. 한참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 많던 시절 핀해놓았던 곳인데, 언니 아니었다면 또 핀만 해놓고 막상 와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와인을 1병 추천해달라 부탁드렸다. 레드와인을 가져오실 줄 알았는데 스파클링을 가져오셔서 셋이서 각자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진짜 맛있었다. 자신있게 한 병만 뚜벅뚜벅 가져오신 것에는 분명 엄청난 자신감이 있으셨던 것임. 그런 와인이었다. 그리고 셋 다 라벨을 찍는 것을 깜빡함 (미쳐). 라벨에 고양이가 그려져있던 것 같습니다...
자제력 있게 셋이서 와인 1병에 각자 글라스 1잔씩으로 마무리하고 (n년전 넷이서 와인 7-8병+n잔씩을 하고도 너끈했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세월이 흐름). 별이 총총했을 한라산을 넘어 숙소로 향했다.
애초에 우리 말고 두세 사람이 더 오려고 했던만큼 독채 숙소는 정말 크고, 넓었다. 잘 지어진 건물들을 보는 것은 늘 즐거운데, 정작 안에 들어가볼 일은 없었기에 매우 흥미진진하게 숙소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재미있어😍


예상 못하게 숙소에서 가장 만족하고 잘 사용한 것은 짱짱한 우퍼가 달린 오디오. 베이스 끝내주는 거 뭐 틀지, 이거로 뭐 들어야하지, 하며 서로 신청곡을 주고받으며 늦은 시간까지 한참을 뒹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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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자제한만큼 다음날 숙취 없는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큰 창으로 햇빛이 잔뜩 흐르는 거실에서 또 오디오를 켜고, 이따 저녁에 뭐 들을지 논의함. 이 날 아침의 따뜻함이 좋았다.




콜택시로 중문에 나가 쏘카를 빌렸다 (연말 제주를 갈 땐 렌트카를 미리미리 빌립시다.). 날이 시리게 맑았다.

방주교회를 들렸다. 교회가 데칼코마니처럼 비쳐야할 수면이 얼어서 그러한가 아마 건축 설계 시 의도했을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정면으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이 더 홀리하였고. 그 풍경을 교회보다 더 정면으로 누리고 있는 포비에서 아침 커피와 소금베이글과 말차스콘을 테이크아웃했다.
이 조망과 이 교통 입지, 이 규모의 터에 건축가의 교회와 잘 지은 카페라니. 이쯤되면 새로운 관광 상품, 건축 상품에 교회가 컨셉으로 이용된 게 아니냐며 웃었다.




간발의 차로 우리 앞에 단체 손님이 먼저 주문을 하여 커피가 나오기까지 꽤 기다려야했는데, 그 덕분에 테이크아웃이면서 아침 제주 포비의 공간과 풍경을 오래 누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포비를 꽤 좋아해서 오가며 구인공고를 볼 때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곳 면접을 보는 상상을 하는데, 제주 방주교회 옆 포비 너무 좋네요. 저 풍경을 보며 일할 수 있다니.

언니의 제안으로 미리 체험 프로그램을 예약한 말 생츄어리에 도착했다. 퇴역 경주마 혹은 식용으로 길러져 도축되기 전의 말들을 구조하여 너른 목초지에서 보호하며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곳이었다. 대표님으로부터 30분 가량 생추어리 소개와 비전을 들을 수 있었다. (대표님에 따르면) 보통의 동물 보호 활동이 구조 - 보호 - 입양의 삼각꼭지로 구성되어 돌아가는데, 일단의 구조와 이후 자원의 제약에 따른 실제 보호환경의 제약들, 때론 안락사와 대조시켜서까지 동정심에 의한 입양 홍보와 추진을 고려할 때 그에 대안인 것을 찾고 싶으셨다고.
"구조하고, 여기서 좋은 풀 먹고 맘편히 살 수 있도록 이 환경을 제공해줄게. 대신 너희(말) 데리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거야, 그 때 함께해줘. 그리고 너희가 직접 번 돈으로 이곳을 운영는거야."
구조된 말들에게 일종의 치유프로그램으로 자기 밥벌이(?)를 하며 양질의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구조 이후의 제 2의 인생을 제공해주고 싶으셨다고. 그래서 말들은 일종의 말-사람 교감을 통한 치유프로그램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 모델은 “치유농업”과 같은 키워드로, 여러 6차산업, 농촌대안정책의 우수한 사례로서 주목 받고 있었다.
낯선 기분과 약간의 거리감으로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두 가지가 인상깊었다.
첫째, 마치 말도 이 사회의 한 주체인 것처럼, 함께 돈을 벌어 제 생활을 유지하는 자신의 동업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이 일방적으로 말을 소비하는게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신기했다. 물론 이는 말이 각종 스트레스와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프로그램의 내용과 빈도 등이 보장되어야한다. 그런 기본 전제 하에 좀 신선한 접근이었달까. (그나저나 제 몫을 벌 때만 상호 주체간 평등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나는 정말 뼛속까지 자본주의의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역시 토지에 대한 부담이 적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둘째, 구조한 동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나 그들의 치유보다 사람의 치유에 대해 더 자주 말하신다는 것이다. 말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말이 치유를 받는다는 수사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치유나 힐링이 필요한 인간이 얻어가는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인간 싫어 동물은 좋아’ 가 아니라 그럼에도 꾸준히 인간의 치유와 성장, 인간들의 관계에서의 변화를 믿어야하며 그 가치를 잃지 않아야한다는 듯한 전제였다.
나는 동물권에 대해선 정말이지 요새 감각으론 도태되어야할만큼 무지하고, 인간중심적이며, 언젠가 적겠지만 동물과의 교감 같은 것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오히려 위와 같은 태도가 좀 더 와닿고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달까. 덜 기만적으로 느껴졌달까. 결국 우리와 같은 언어를 공유하지 않고, 그러나 우리 인간의 언어와 질서로 구성된 세계에서 살아야하는 다른 종의 생명에 대해 타자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건넬 수 있는 존중과 돌봄은 어떤 것인지.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온 뒤 동물을 좋아하고 녹색운동을 해온 언니에게 이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언니가 말하길 말처럼 지능이 높은 동물들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즐긴다고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차로 조금 이동하여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날씨가 좋아서 정말로 18-19세기의 목가적인 서양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세 마리의 말 친구들과 함께 시골길을 걸어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었다. 자주 있지는 않지만 동물 앞에 서면 그들은 늘 내 생각보다 커서, 정말 인간은 한 줌이다, 덩치도, 힘도. 말들은 묵직한 몸으로 터벅터벅 땅을 울리며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풀.뜯.멍을 했다. 말이 풀 뜯어먹는 거 보며 멍때리기. 정말 별 게 아닌데 정말 평화롭다. 말들은 생각보다 우적우적, 매우 빠른 속도로 입을 움직이며 풀들을 흡입한다. 그래서 그들이 입을 움직이는 것, 풀을 뜯어 삼키는 것은 전혀 고요하지도, 느릿하지도 않은데, 매우 마음이 고요하고 느릿해진다.
풀을 뜯어먹는 말의 등에 잠깐 올라탔는데, 승마장의 말들과 달리 안장이 없어서 정말 그의 몸과 내 몸이 청바지 한 장을 두고 맞닿은 셈이었다. 그래서 풀을 뜯어삼킬 때마다 진동하는 움직임, 그리고 생각보다 꽤 더운 그 생명체의 온기가 엄청 생생하게 느껴졌다.
말들이 풀을 너무 정신없이 맛있게 먹어서 보고있자면 "그렇게 맛있나" 싶어 나도 풀 뜯어먹어보고 싶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순식간에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즈음 나는 나에게 결여된 것들에 대해 생각하던 시기였고, 나에게 없는 것들 중엔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스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그들과 교감하는 방법이 있었다. 언니의 제안을 기쁘고 흥미롭게, 조금 설레며 승낙했지만 말과 놀고 난 뒤 옷이 더러워질 것과 냄새가 날 것부터 걱정하는 나라는 인간. 그래서 앞서 설명을 들으며 여러모로 마음이 시끄러웠는데, 그런게 좀 우스워지는 시간이었다.
(치유나 힐링 같은 단어에 뒷걸음치는 편이지만, 확실히 무언가, 각자 제법 고된 시간을 보낸 올 해를 조용히 꺼내서 어딘가에 흘리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주에 또 오게된다면 그 때, 지금보다 날이 좀 더 따뜻할 때 또 와도 좋겠다고. 풀베기를 하는 시즌 달리는 말들도 보고싶다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대표님이 가르쳐준 식당으로 향했다. 늦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약간의 대기 후에 들어갔다. 갈치구이와 고등어조림, 성게미역국이 나오는 갈치구이 정식! 그리고 놀라운 가격 인당 12,000원! 갈치와 조림도 당연히 맛있었지만, 바닷가(물론 식당은 바닷가는 아니다)의 미역국 러버로선 미역국이 제일 맛있었다. 나오자마다 싹싹 비워서, 언니가 한 그릇 더 시켜줄까 물어봤던.




그리고 드라이브를 했다.

바다를 보고.



새 해가 되기 며칠을 앞두고 내가 에그타르트를 좋아하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동선에 맞는 에그타르트 맛집이 있는지 검색해서 잠시 들려 포장.

가려고 했던 LP 카페는 이미 대기자가 많아 포기.


미리 예약해둔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 남은 시간이 꽤 되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드라이브며 카페며 사실 계획(?)했던 곳들을 제대로 가지 못했는데, 어쩐지 이날 오후 지루한지 모르고 시간이 빨리 갔던 것 같다.
일몰을 보고자 애월 쪽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애월! 나는 막연히 한적하고 소박한 동네인 줄 알았는데, 대형 주차장을 갖추고 사람이 무척 많은 관광지역이었다. 무튼, 뷰 하나만 보고 앉은 카페 겸 바는 생각보다 좋았다. 이 때의 시간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사진을 찍는 길가 자리였는데, 절묘하게 위치가 높아 시선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음료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음악이 좋았다. 뭐랄까, 나와 짝꿍 둘 뿐이었다면 관광지의 난데모를 컨셉의 카페에 들어가지 않고 일몰 구경도 적당히 아쉽게 했을 것 같은데, 역시 언니와 함께 해서 가볼 수 있었던 곳이자 새로운 경험. 그래서 올 한 해 손에 꼽을만큼 아름다운 일몰을 아주 긴 시간 천천히 집중하여 볼 수 있었던 곳. 좋았다.





제가 호시노겐에 최근만큼 미쳐서가 아니고요, 아마 몇 년 전이더라도, 그래도 정말 'FUSHIGI' MV, 그리고 SAKEROCK의 'SAYONARA' MV의 하늘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그런 하늘이었다. 후시기한 하늘. 바다가 하늘에 번지고, 하늘이 바다에 번지는 그런 순간. (물론 그 두 MV는 한 밤 지새우고 동이 터올 때의 하늘이 아닌가 싶지만. 일출을 보지 않은지 너무 오래라 모르겠다.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는 둘 다 비슷한 아름다움을 갖는구나.)
지겨운 줄 모르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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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저러니해도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올 해의 마지막 해는 아니어도 꽤 연말의 해, 몇 번 남지 않은 해가 지는 것을, 이렇게 아끼는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바라볼 수 있구나 - 올 한 해 고생했다, 하는. 그런 생각을 엷게 했던 것도 같다.

인간인 내가 이러니저러니해도 바다는 변함없이 하루에 차고, 지고, 해는 뜨고, 지고.
제주 여행의 마그넷을 고르기 위해 애월의 기념품가게에 들렸다. "어디 얼마나 촌스러운 것들(P)이 있는지 보러갈까" 농담하며 들어갔는데, 앗,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주, 여기 귀촌한 예술가들의 도시였지. 하나하나 정말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이, 가짓수도 엄청많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갑을 붙들어 메야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언니가 귀엽다고한 돌하르방을 하나 집어 몰래 재빠르게 계산하고, 그 외 회사에 가져갈 과자를 몇 개 샀다. 한참 재미있게 구경한 나머지 맞은편의 기념품 가게도 구경하자고 흥분하며 들어감.


띠별 신년 운세 뽑기도 했다. 세 사람 모두 적당히 좋은 말이 쓰여있던 것 같은데, 특히 더 마음에 드는 좋은 말만 기억에 남기자고 했다.



언니가 축하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좋은 샴페인과 함께 좋은 저녁에 초대해줬다.








다같이 알딸딸해진 채로 돌아와 별을 보겠다며 숙소 여기저기 왔다갔다.

노곤해진채로 거실소파와 바닥에 편하게 늘어져, 에그타르트를 먹고, 남은 맥파이의 맥주를 마시고, 한참 음악을 듣고. 이 우퍼 스피커 + 무손실 음원의 조합으로 Mitski의 First Love/Late Spring를 재생했을 때 모두 '우와' 하고 탄식 섞인 감탄을 함.
https://youtu.be/DVIaDzs1EH4?si=gpgt0nLrZ9bJegf7
아침엔 파르나스 호텔 아래 카페에서 커피를 뽑았다. 그리고 길을 따라 색달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거의 봄날의 바다였다.





셋의 마지막 식사는 오리샤브샤브로. 배추를 잔뜩 넣고 끓인 맑은 국물에 오리 가슴살 샤브샤브와 오리백숙을 해먹고 흰죽을 끓여먹는 집이었다. 샤브샤브로 먹는 서걱거리는 오리 고기는 좀 낯설었고, 흰 죽이 정말 제대로였습니다.


언니를 먼저 보내고, 다시 둘이 되어 공항 전망대에서 비행기를 좀 보았다. 커피를 뽑아 비자림에 다녀오기로 했다.

제주는 크고. 겨울엔 해가 짧고. 어렸을 때 가봤던 기억에 비자림은 어둡고 축축하고, 인적이 드물어, 해가 지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오십분을 달려 이십여년만에 도착한 마감 1시간 전의 비자림은 사람이 많고, 기억 속의 숲보다 훨씬 더 정비되어있었다.


사계절 푸른 나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가지가 뻗어나간 그 속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무 기둥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구체적인 방향과 각도는 의외로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풍경화를 배울 때 그걸 알았다. 늘 나뭇잎으로 덮여있어 내가 그것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이런 계절에 드러난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그 무자비한 뻗어나감과 얽혀짐이 조금 무서울 때가 있다. 그런 숲을 헛둘헛둘 무슨 조깅나온 사람들처럼 빠르게 걸어 돌았다.
늦게 온 제주라, 최근 몇 년 동안 함께 다녔던 이곳저곳을 떠올리며 서로 닮은 점을 떠올리곤 했다. 새로운 곳에 왔을 때, 과거의 다른 장소를 무턱대고 가져다대 단순히 닮고 다름을 말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쉽지 않다. 어떤 길에선 강릉에서 동해, 삼척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바다를 옆에둔 낮은 도로에선 돗토리의 어딘가를, 자칫 징그러울 수도 있는 나무 줄기와 덩이가 무성한 숲에선 오키나와 북부의 산을 떠올렸다. 달리는 내내 옆으로 산을 끼고 있다는 것이 요나고의 산을 닮았는가, 아소의 산을 닮았는가 그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열심히 다녔던 곳을, 당분간 없을 나들이를 압축적으로 복습하게 되었다. 여기를 좋아하면서도, 갔던 곳을, 언젠가 다시 갈 곳을 그리워했다. 그러면 꼭 이 시공간을 두고 바람을 피는 기분이라 미안해진다.
어쩌면 해가 지는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 돌아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또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 도로도 생각보다 해안에서 안쪽으로 들어와있었다.


이미 새까매져 비행기 뜨고나는 것을 볼 수 없는 도두봉 아래에서 핸들을 틀었다. 차를 반납하고 이쯤에서 이번의 제주는 마무리짓기로.


다녀와서 벌써 몇 주가 지났다. 가기 전까지 여러모로 속이 시끄러운 여행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녀오니 생활의 여러 군데에서 각기 다른 장면이 떠오르며 의지가 되고 있다. 제주 치고 바다를 적게 본 것 같지만, 우리의 첫 제주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고, 언니에게 고맙다. 이 때 본 산, 들, 바다, 뜨는 해, 지는 해를 보며 또 한 해를 살아보자. 그 때까지 제주도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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