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근하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 올 해의 XX"에 '올 해의 광0고'를 넣으려했었는데.
출근길에 타는 버스 노선이 여럿인데 그 중 가장 적게 탔던(가장 배차 간격이 띄엄띄엄) 번호의 버스 안에서 보았다.

살고 있던 동네엔 크게 외식거리가 있다. 작은 프랜차이즈 맥주집부터 시끌벅적한 단체 회식하기에 맞는 고깃집, 칼칼하고 시원한 각종 국물요리집도 있지만, 지하마다 자연스럽게 온갖 유흥업소도 섞여있다. 반려인과 운동하러, 외식하러 나가는 골목에서 그런 간판이나 전단지를 굳이 의식하지 않지만, 의식하려하면 정말이지 촘촘하다. 언뜻 보기에도 종류와 규모 다양하여 참 이렇게 지갑사정이랄까, 어떤 계급의 소비자도 누릴 것이 있을만하게 촘촘히 라인업을 짜놓는 시장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 반려인과 어느날 치맥을 하거나 나베에 소주를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서 '그래서 어디가 좋네', '이 차를 가자'는 말들을 부끄러운지 모르고 취해 떠드는 사람들을 본 적도 몇 번. 그래서 처음 이 공공광고를 봤을 때 '와 버스 노선 타겟팅이 정확하구만' 이라고 생각했다.
한 쪽에 '성노동'이나 '성판매', '성(피)착취'라는 단어/개념어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로 짧게 체감하기엔 구체적인 여성 개인(들)과 어떤 식으로 더 가깝게 밀착해야하는 활동이냐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가 조금씩 달랐다. 그랬겠지. 다만 언젠가 문화사회학 수업의 남성 교수님이 말하였듯 다른 쪽에서 '구매한다'는 행위는 너무나 분명하다. 성을 구매하는 것인지, 타인을 착취할 권리(그런게 있는 지 모르겠지만)를 구매하는 것인지, 구매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있겠으나 '구매할 수 있다고 믿고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의 주체성과 행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매자"라고 지칭하고 부르는 것, 성매매라고 두루뭉술, 마치 판매하는 쪽과 구매하는 쪽이 대등한 것처럼 뭉그러트리는 표현말고 우선 '구매자'부터 지적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몇 년만에 '성구매'라는 적확하고 방향이 있는 단어를 봤다. 누군가는 '성구매'라는 단어가 낯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낯선 것을 마주하게 하는 것도 대중을 향하는 광고의 기능이며, 이런 공공 광고도 광고라는 생각을 하면. 가끔 일터의 광고들이 너무나 지긋지긋해도 또 힘이 나기도 했다.
2.
집에 온 민우회의 활동소식지를 뒤늦게 뜯어보았다. 다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노동-소비 무한반복 탈출 챌린지 :
지금의 절반 수준만 노동해도 불안하지 않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참 이 회사 다니는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돈을 번다'라는 행위를 그만둘 수는 없어서, 내가 벌지 않는다는 건 가까운 누군가를 착취하고 사는 것 같아서, 자본주의라는 벽을 - 걔는 늘 그 자리에 우뚝 서있었겠지만 - 새삼스레 마주하곤 했었다, 작년 내내.
올 해 조금씩 먹고,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맨손운동을 더 한다거나 남는 시간에 글을 읽고 쓰겠다는 것. 좀 더 나홀로 조용히 사부작 거리겠다는 것.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은 사실 소비 규모를 좀 더 줄여보겠다는 다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비를 줄이면 과연 벌어야할 돈이 적어질 수 있을까. 좀 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렇게 개인적인 수준으로, 또 정직하게 비례하는 것이었다면, 나를 그렇게 쉽게 자유롭게 두는 것이라면 그게 구조일까 싶지만서도. 나는 '이렇게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렇게까지 그 곳에 내 시간을, 노동력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3.
지난주에 SNS에서 '감히 잘라 부분만 발췌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통째로 좋다고 권유되던 조문영 선생님 인터뷰를 보았다.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401031716001#c2b
[전문]‘약자’ ‘카르텔’ 호명에 담긴 윤석열 정권의 분리통치···조문영 “빈곤은 이벤트·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지난해 크게 주목받은 학자 중 한 명이다. 연말 <빈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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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환승해서 멀리 가는 지하철에서 숨죽여 읽었다.
현장을 오래 들여다 본 사람이 켜켜이 쌓인 이론과 연구라는 거인의 어깨에 서서 훈련된 언어로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는 것.
어쩌면 여우가 먹지 못한 포도를 신 포도라고 한 것처럼, 일을 하면서 위악처럼 그런 것들의 무용성에 고개를 끄덕이고, 짐짓 냉소적이고 쿨한 척 해왔던 것을 당연하게도 일순간 부숴버리는.
“의존(성)은 장애학, 여성학에서 오랫동안 비판적으로 다뤄왔습니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부자의 의존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못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사업이 휘청거리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구제하려고 하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 연방 정부가 (기업들의) 천문학적 액수의 빚을 탕감해준 거잖아요. 그것도 다 ‘의존’인 거죠. IMF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의존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의존하는 걸 못 느끼고, 그걸 너무 당연시할 뿐이죠. 국민연금, 건강보험도 정부가 일정 부분 다 지원하는데, 항상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보조금이나 실업급여, 산재 보상금 같은 것만 문제 삼죠. 정부의 부채탕감이나 연금 보조 같은 형태로 이뤄지는 부자나 중산층의 의존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수급 의존을 ‘나태’니 ‘부정수급’이니 ‘도덕적 해이’니 하며 더 죄악시하죠. 빈자의 의존, (의존하는) 빈자의 품성만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인 거죠.”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한 학생이 ‘자기가 대학 와서 장애나 여성, 퀴어 주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익숙한데, 빈곤이라는 주제는 너무 낯설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곤은 끊임없는 과정이자 배치죠. 결국에는 등장시켜야지 존재할 수 있잖아요. 빈곤이라는 것도 어떻게 등장시킬 것인가의 문제인 거죠. 저는 빈곤에 관한 구조적 분석에 동의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저렴하게 자연을 쓰고 저렴하게 생명을 쓰고 저렴하게 노동을 쓰고, 이 과정에서 빈곤은 구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데 빈곤을 물질적이고 실존적인 결핍의 문제라고 했을 때 우리가 과연 어떤 빈곤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는 빈곤이 실체로서 등장한 이후에라야 가능하다는 거죠. 그걸 등장시키는 작업이 바로 통치죠. 빈곤을 얘기하는 순간 빈곤 통치가 특정한 형태와 양식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복지를, 수급을, 의존을 문제 삼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빈곤을 쉽게 정의해선 안 된다고 봐요. 빈곤을 쉽게 정의하고 쉽게 해법을 내세우는 통치술을 의심하고 거부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나면, ‘구조의 문제인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며 뒤로 물러서게 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를 난공불락의 괴물로 묘사하니 냉소만 늘잖아요.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하죠.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단상에 나와 연설했어요. 우리가 종로에서 차선을 가로막고 시위를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짜증을 냈죠. 몇몇 사람들은 엄청 욕을 하고 째려보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박 대표가 ‘지난 20년 동안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왔는데 왜 저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지 아십니까’라며 청중에게 물었어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직접 답을 했어요. ‘그것은 저희가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세 번 아주 천천히 외쳤어요. 그 순간 놀랐던 게 그 집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행인도,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매우 진지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던 거예요.
‘저들의 비참’에서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재해석하는 게 필요하죠.
‘애도할만한 삶’에 관한 질문은 어떤 상황에 있든 계속 새롭게 던져야 합니다.
제가 해제를 쓴 매슈 데즈먼드의 <미국이 만든 가난>에서도 진보적 백인 엘리트는 담을 두른 저택에 살면서 공공주택 정책을 지지하고, 방치된 공공주택 단지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 나와요.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모두가 분리주의자인지도 모른다’라는 대목이 한국에서 전혀 낯설지 않죠.”
한국 사회에선 ‘저들’의 비참과 ‘우리’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저들’의 비참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감각, 다시 말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입장과 ‘우리가 살기 위해 저들의 비참을 위험하지 않은 수준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맞서고 있는데, 난민이나 이주민을 국민됨의 성원권이 아니라 그냥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내 곁에 와서 존재하니까 자리를 내어주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어디까지 연구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주름들을 섬세하게 짚어낸다는 게 한편에선 굉장히 위험해요. 연구자가 빈자들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부각한다면, ‘도덕적 빈자’라는 전형을 강화할 위험이 있죠. 사람들은 가난한데 맘 좋고 성실하기까지 바라죠. ‘착한 빈자’의 재현은 ‘나태한 빈자’의 재현만큼 위험할 수 있어요. 가난한 공동체도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을 겪어요. 살면서 갖은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모이니 의심도 불화도 커질 수밖에 없죠.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쉽게 해부 대상이 되는데, 한편으론 부자의 삶은 연구 자체가 어렵거든요.
저를 두고 ‘연구와 삶이 일치한다’는 평도 있는데, 그게 일치가 됐다면 제가 엘리트 대학의 정규직 교수를 계속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죠.
살면서 다양한 물질적, 제도적, 정동적 힘들과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가 되었다면, 나 역시 마주침을 통한 배치의 결과로 봐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마주침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익숙한 만남이 아닌 낯선 마주침을 계속 시도하는 게 교육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말과 말, 글과 글, 몸과 몸이 마주칠 때 다른 인식, 감각, 성찰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서울시는 지금 ‘약자’를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죠. 오늘 제가 버스 타고 올 때 서울시 광고가 나오는데, 약자들도 위하고, 세계인들도 좋아하는 도시를 만든다는 식으로 홍보하더라고요. 제가 봤을 땐 조금 어이없는 표현이에요. 2000년대 초반 중국 정부가 경제적으로 추락한 인민을 약세군체(弱勢群體)라고 불렀어요. 실직 상태의 노동자들, 농촌에서 온 농민공들, 농민들을 묶어서 약세군체라고 하면서 당과 정부가 이들에게 베푸는 지원들을 강조했죠. 중국은 사회주의라는 독트린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인데, 당이 사회주의 대표 계급인 농민과 노동자를 대놓고 약세군체로 명명하는 걸 보면서 착잡했죠. 서울시나 현 정권이 특정 집단을 약자라고 명명하는 순간 ‘내가 너를 위해서 뭘 해줄게’라는 온정주의적 관계가 만들어지죠. 저항을 지워버리는 거죠. 중국도 약세군체라고 명명된 이들이 권리를 내세우며 저항 운동의 주체로 등장하면 바로 ‘체제 외’로 규정해 탄압합니다.
국가가 정한 규칙 안에서 ‘예스’ 하고 감사할 줄 아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거죠.
제가 더 화나는 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분리 통치에요. 저항하는 사람들을 불온시하고, 권리를 외치기보다 국가가 제공하는 보호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을 ‘약자’로 호명하면서 체제 안으로 끌어안는 통치죠.
담 안’에서 특권을 누려 온 사람이 ‘지방’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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