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기 대신
야근할 각오로 출근했지만 그냥 튀튀했고, 일찍 퇴근해서 영어과제도 하고 주간일기도 쓰려했지만, 사실 돌아오는길에 달걀이랑 두부를 사고나니 다 귀찮아졌다. 그래서 이번주는 주간일기 대신.
어제 만화 <위국일기>를 다 보았다. 영화는 진작에 보았고, 만화는 2권까지 읽고 썩 내키지 않아 덮어두었다가 어제 미친듯이 몰입해서 보았다. 직전 상담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꽤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보니 모든 것에 무감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만화책을 보며 눈물 찔끔 나올 정도면 아직 그렇게까지 무감해지진 않았나보다. 다행이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끊임없는 파동. 사람이 사람과 영향을 주고 받는 것. 결코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지만 끝까지 곁에 있고자 하는 것. 그런 이야기는 왜 질리지 않고 여전히 날 울게할까.
한편 아사의 아빠와 엄마에 대해, 아사가 그러하듯 결코 다 해명되지 않은채 이야기가 끝난 점이 좋았고.
뒤로 갈수록 페이지과 컷을 사용하는 것이 점차 과감해지는 것이 좋았다. 탄탄히 쌓인 이야기는 한 페이지 전체를 비울 용기를 주나보다.
나를 키운다는 것과 애정은 엄청 다른데 존재했다는 느낌이 들어. 어머니는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걸 나한테 주면 내가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아들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
'난 거기서 내려오겠다, 다시는 그 씨름판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많은 게 편해졌거든요. 보다 위험한 짓을 한 놈이 이기고, 보다 여자를 물건 취급할 수 있는 놈이 이기고, 보다 편하게 이득을 본 놈이 이기는. 그 연쇄를 끊어내지 않고 치킨 레이스를 하며 냉소하는 세계. 사실은 압박감에 짓눌려 죽을 것 같으면서도.
좀 재밌네. 사랑받는 데엔 어색함이 없으면서 장점을 칭찬받는 건 어색해?
고독은 왜 그녀에게 하듯 내게 다정하지 않은지,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고독의 사랑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고독의 사랑을 받은 만큼 고독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는 당연한 권리로 아무도 침범할 수 없어. 누구나 자유롭다는 것,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은 태어난 것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것, 난 그런 생각을 통해 구원받았기 때문에 사회과 선생이 됐단다.
- 그래서 아사와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는 게 두려운 걸까. 충돌할 것 같아서.
-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 충돌해도 회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건 사교적인 사람의 사고죠. (충돌하는 것 자체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 사람 인생에 어디까지 개입해도 될지 고민스럽단 얘기야.
춥고, 진짜 너무 피곤해서 나가지 말까 망설였다가 나갔던 지난 집회에서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시민 발언을 들었다. 너무 추운 마음에 나가기 전에 '이렇게 우리가 추운데서 모여 떨어도 그들이 눈하나 깜짝할까, 우리가 미련스럽다 비웃고 말겠지.‘ 하는 회의가 한 순간 스쳤었다. 시민분은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건, 이 계엄/탄핵의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하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그런 말씀을 했다. <위민토킹>의 오나의 반짝이는 눈이 떠올랐지. 그래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해서 모여서 얘기해야한다. 의미가 있다.
백만년만에 재주소년의 공연을 봤고, <터>라는 노래가 이런 가사였나 새삼스레 들었다. 노래에 맞춰 휘날려지는 깃발들이 정말 장광이었다. 지는 해의 붉은 빛에 맞추어 일제히 펄럭이는 모습이 진짜 아름다워서, 그 개자식들에게 저항하는 것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의 호랑이야 지금도 살아있느냐
살아있으면 한 번쯤은 어흥하고 소리쳐봐라
몇 년째 라이브를 보러가야지, 보러가야지하고 못갔던 9와 숫자들의 무대도 있었다. <높은 마음>이 첫 곡이었다. 좋았다.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합창으로 불러지는 민가에 짝궁이 발걸음을 멈췄는데, 무슨 노래냐 물어보니 <평화가 무엇이냐> 라는 노래라고 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새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노래와 춤에 좀 재능이 있다면 (없어도 너무 없지) 저런 시민활동을 할 수 있어도 좋았겠다.
피마새 3권이 진입했다. 이제 재미가 붙어서, 아 휴가쓰고 내리 읽고싶네.
피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피해 버리면 진짜 좋은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고요. 예, 매달 즈믄누리의 무사장이 찾아오고 매일 성채 매장자가 출동해야할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는, 제 소견이 얕아서 아직 찾아내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을 거에요. 정말 좋은 것. 시시하지 않은 것. 그것은 쉽게 사라지는 킴들의 특징 때문에 찾기 어려운 것일 거에요. 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에 잠시 옆으로 치워 둔 것일지도 몰라요.
2권에 특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아실의 분리주의에 대한 락토의 찬찬한 설명이라든가. 유료도로당과 자유무역당의 언쟁이라든가. 꽤 여러 부분을 핀해놓고, 결국 일기장에 옮기고 싶은 건 정우의 희망.
아무리 시니컬해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이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쓴다. 그런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