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에서 꺼낸 이야기/2024_봄_일본_오키나와

[2024 봄이 오는 오키나와] 나하 그리고 마지막 드라이브

momorae 2024. 7. 13. 14:58

나가구스쿠 성 역시 문을 닫을 즈음 내려와 여행의 마지막 3박4일을 묵을 나하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숙소 위치 최고, 시설 최고 (물론 가장 낮은 방이 아닌 하나 높은 방을 예약하여 조금 넓었다). 그리고 숙박요금에 포함되지 않은 주차비는 비쌈. 꽤 오래 집을 떠나 돌아다니고 있다는게, 그리고 제법 길었던 여행의 끝자락이라는게 은근하게 쌓인 몸의 피로감으로도, 그리고 빨랫감으로도 실감이 되었다. 출발 전 계획했던대로 호텔의 런드리룸에 최소한의 세탁을 돌려놓고 저녁을 먹고 오기로. (세탁건조 일체형 만만세)
 

해질녁 도착한 나하. 오키나와 여행 7일만에 드디어 본격 나하.

 
처음 방문한 식당은 예약이 다 차서 워크인으로는 식사 불가. 괜찮아, 오키나와 또 올거거든. 서점을 가자니 백화점 윗층에 서점이 있어서 서점과 타워레코드, 그리고 겸사겸사 백화점을 찬찬히 돌아내려오며 구경했다.
 

오키나와 왜 왔냐구, 태섭의 고향이니까
친구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찾아보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도 찾아보기.

 
백화점 6층 이벤트 코너에서 일본 전국 맛집 대열전 같은 게 열리고 있었다-! 교토의 채소절임, 홋카이도의 게살고로케 등등 일본 전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들을 팔고 있었는데,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웠다. 와 그냥 여기서 이것저것 사서 호텔에서 저녁을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감자 고로케를 하나 사서 배만 채웠다. 지하 식품관에서 열릴 법한 행사를 각종 의류 매장 옆 이벤트 플로어에서 하고 있다는 게 다소 낯설었네.
 

나하 곳곳에 많았던 알 수 없는 스리라차 자판기

 
저녁에 가기로 한 술집 겸 밥집이 있었다. 빨래를 다 돌리기까지 시간이 애매하여 잠시 검색하다가 맥주나 한 잔 하자 싶어 적당해보이는 비어탭에 들어갔고... 그렇다, 운명이었다. 딱히 오키나와에 맥주를 기대하고 오지 않았거든, 그런데 여기서 이번 여행의 맥주를 만났다... 그리고 이 비어탭에는 "오키나와 크래프트 맥주 지도"가 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음주 3박4일 시작.
 

사실 오키나와는 바쿠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던 거임 (아님)
우리가 나하에서의 3박4일 별 계획 없던 건 어떻게 알고 점지받음

 
나중에 검색해보니 오키나와는 면적에 비해 로컬브루어리 밀도가 꽤 높은 지역.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아와모리만 검색해보고 맥주는 크게 찾아보지 않았는데 사실 북부와 중부에서도 각각 갈만한 브루어리들이 꽤 있었다. 글쓰며 검색해보니 지난 4월에는 나하 맥주 축제도 있었고. 다음엔 맥주 여행을 와도 좋겠다.
 
서둘러 마시고 세탁물을 찾아 방에 넣어두고 저녁을 먹으러. 여행지에서 코인 세탁기가 주는 타임리밋 도시 거닐기는 언제나 즐겁다.
 

오키나와의 고야 참프루, 나는 좋았다. 녹색야채 + 두부 조합은 옳다. 저속노화아닌가요.
나하의 웃긴 간판

 


 
삼십대의 여행이란 건 '여독'이란 게 있다는 것. 아침에 눈을 뜨려니 지난 일주일의 여행으로 말미암은 피로로 눈을 뜨기 어려웠으나, 오늘 오전이 렌트카 반납 전 마지막 운전 여행이 가능한 시간이란 사실을 짝궁과 서로 인지시키며 이 악물며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여행 최고 카페를 발견했으니 칭찬하자, 우리.
 

건너편 남쪽으로 아침 드라이브

 
이른 아침 우리만 있던 미바루 해변.
 

찰박거리는 아침 바다

 
적당히 모닝커피를 테이크아웃하려고 구글 맵에서 평점이 높고, 이른 아침 문 연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인적 드문 해안 절벽에 차를 세우고 해안으로 향하는 축대 아래 쪽으로 돌계단을 내려갈 땐 이 카페의 생김새와 위치를 전혀 가늠하지 못했었다. 비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와 나무 삐걱거리는 카페로 들어선 순간 등 뒤의 짝궁에게 "렌트가 몇 시 반납이지? 잠깐이라도 앉았다가자."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고, 어느새 함께 들어선 짝궁도 당연하다는 듯 끄덕였다.
 
왜냐하면 바다를 향해 길쭉하게 창가의 바 자리로 보이는 풍경이 이러했거든.
 

구글맵이 안내해주는 곳에 차를 세웠을 땐 카페의 지붕만 보였다
이렇게 지어진 카페였다

 
맥주 지도도 그렇고, 아직 기약 없는 다음 오키나와 여행 일정을 수집한다. 다음엔 이 카페에 머물 반나절을 비워둬야지. 책 한 권 들고와 책 보다 바다 보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지.
 
천천히 밀려드는 바다와 구름의 이동에 따라 변하는 물빛을 보는게 하염없이 즐거웠다.

 
가야지.. 이제 정말 일어서야지.. 세 번쯤 반복하다 아쉬운 마음에 카페 엽서를 한 장 사서 겨우 일어섰다. 이번 여행 최고의 카페였고,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가장 그리운 곳 중 하나이다.
 
작은 어촌마을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 바로 앞 튀김 가게를 들렸다. 오픈 시간에 맞춰 어디선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은 유리창 앞에 줄을 섰다. 먹고 싶은 튀김을 체크하여 전달하면 막 튀긴 갖가지 튀김을 종이봉투에 한아름 담아 안겨준다. 차 안에서 호호 불어가며 짝궁과 번갈아 한 입씩 베어물며 "이건 뭐지" 맞춰보았다. 오징어와 새우도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지만 해조류 튀김들이 별미였는데, 바다향과 폭신폭신한 식감이... 먹고 싶습니다.
 

이모 왜 망설였을까, 그냥 먹을걸
모즈쿠 튀김

 
다음은 세소코섬. 자동차를 반납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릴 곳. 공항에 이착률하는 비행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하여 처음 여행 일정을 계획할 때부터 짝궁이 가고싶다 선언한 곳. 나는 좀 더 황량하고 내 남편과 같은 비행기 덕후들이 가는 섬일 줄 알았는데 '우미자키 테라스'라는 엄청난 야외 상가 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테라스에 대한 나의 첫 감상은 '계단식 성수동'...?! 바로 몇 시간 전 우리밖에 없던 고요한 바다와 너무 다르게 북적이고 젊고 반짝였다. 실제 날도 개었다.
 

이 도시 공간을 최초 설계, 제안했을 때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끝도없이 뜨고 내리는 수많은 비행기를 보며, 짝궁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나하 공항과 비행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비행기의 움직임에 고개가 따라가는 짝궁 귀여웠고, 확실히 나는 비행기보다 그 귀여움을 노리고 온 것이다, 하하.
 

비행기 조종석에서 보는 바다와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테라스 계단 곳곳에서 본 것들

 
사실 사람에 치여 테라스의 가게들 구경은 설렁설렁했는데, 짝궁의 주장으로 "시샤 주의" 마그넷을 건져왔다 (지금 우리집 냉장고 전면에 잘 붙어계심).
 

시.샤.주.의.

 
서둘러 기어를 넣고 운전하여 아슬아슬하게 2분 정도 남기고 렌트카 반납. 이제 뚜벅이 2.5일이 남았다.